매력적인 장 여행 (이달의 주자: 강석기) 가을리아 엔더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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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매력적인 장 여행』입니다. 장(腸), 즉 소화기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기관임에도(삶을 두 동사로 요약하면 “먹고 싼다” 아닐까요?) 다른 장기에 비해 소홀하게 취급해왔던 것 같습니다. 장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성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합니다. 반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 뇌를 연구하는 과학에 대해 아는 척 하면 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뇌과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지는 벌써 한 세대가 지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생명과학의 핫이슈로 부상한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내미생물 연구입니다. 즉 대장에 살고 있는 수십 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숙주(사람)의 건강에 상당히 중요하다는 게 밝혀지고 있지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장내미생물을 '제2의 나'라고 추켜세우기도 합니다.
2014년『매력적인 장 여행』이라는 대중과학서가 나오게 된 데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실제 저자는 '여는 말'에서 이런 중요한 발견들이 '그들(전공자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어 대중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건강지침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실망해 본인이 직접 책을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저자 기울리아 엔더스가 이 책을 냈을 때 나이가 불과 24세(1990년 생)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교양과학서 수백 권을 읽었지만 이렇게 젊은 저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20대로도 처음 아닐까요?).
저자는 제왕절개 분만으로 태어났고 엄마 젖도 못 먹어 장 건강이 별로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과학자들은 이를 장내미생물 초기정착 실패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저자는 마침 장에 관한 연구가 붐을 이루자 이때다 싶어 주저 없이 이 분야를 택했다는군요.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소화관과 소화에 대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장의 신경체계에 대해 다루고 마지막이 장내미생물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젊어서 그런지 글이 톡톡 튀고 친동생 질 엔더스의 약간 코믹한 일러스트까지 더 해져 술술 읽힙니다. 장에 대한 과학지식뿐 아니라 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팁들이 수두룩하지만 지면 관계상 하나만 소개합니다. 즉 볼일을 보는 자세에 관한 건데요. 저자에 따르면 많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변비와 치질의 상당부분은 좌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집에서나 밖(학교)에서나 쪼그려 앉아서 일을 봤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다들 좌변기로 대체됐습니다. 그런데 쪼그린 자세에서는 배변통로가 직선이 돼 시원하게 변이 나오는 반면 좌변기에 똑 바로 앉아 있으면 배변통로가 꺾여 잘 안 나온다는 것이죠. 호스를 꺾으면 물이 잘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그렇다고 좌변기를 치울 것 까지는 없다고 합니다. 일을 볼 때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양발을 작은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면(또는 뒤꿈치를 들면) 직선이 된다고 하네요. 한 번 실천해 보시고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기겠죠?
제가 추천하고 싶은 다음 주자는 30년 전통의 과학월간지 ‘과학동아’를 이끌고 있는 윤신영 편집장입니다. 20대인 2008년 로드킬 기사로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과학언론상을 수상하며 과학언론계의 차세대 리더로 여겨졌던 윤 기자는 지난해 서른여섯에 ‘과학동아’ 편집장이 되면서 리더로 우뚝 섰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2014), 『인류의 기원』(공저, 2015)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윤 편집장이 어떤 책을 소개할 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내용이 흥미로워 보이는데 저자가 무려 90년생이라니 놀랍네요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