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수학 (이달의 주자 : 이상현) 이언 스튜어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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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수학적 사고가 주는 통찰력
몇 년 전에 한국에 잠깐 휴가 차 귀국했을 때, 서점에 들려 볼만한 책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명의 수학’이라는 저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책의 제목을 보고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생각했던 생물학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흰색가운을 입고, 현미경으로 세포나 바이러스 등을 관찰하거나, 복잡한 생물들을 관찰해 종에 따라 분류하거나, 신약개발로 임상실험을 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반면 수학 하면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흰색 종이에 빽빽하게 수식을 적어가는 모습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도저히 제가 생각하는 ‘생명’과 ‘수학’의 이미지가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저자가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의 생명과 수학을 같이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갈지가 궁금하였습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뉴턴의 미적분학에서 최근 힉스입자를 발견한 LHC입자가속기 까지, 수학과 물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수리물리학의 형태로 각각의 학문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소개합니다. 반면, 오랫동안 수학은 생물학 내에서 기계적인 계산이나 실험데이터의 통계적인 처리 등 간단한 연구 방법으로 써만 존재했을 뿐, 생물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리생물학이라는 수학과 생물학의 융합분야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수학이 생명현상을 깊이 이해하는 통찰력을 주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수학과 물리학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해왔듯이, 21세기에는 수학과 생물학이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정말 그런지 반신반의하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저자가 대중 과학 저술가로서 명성과 경력을 쌓아오고 있어서 그런지, 책전반에 걸쳐 어떻게 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수학과 생물학의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할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책전반부는 생물학의 중요한 다섯가지 혁명에 대한 서사적인 구조로 시작합니다. 현미경의 발명, 린네의 분류, 다윈의 진화론, 멘델의 유전학, 크릭과 왓슨의 DNA구조분석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각각이 생물학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일어난 생물학에서의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수학이 생물학의 지평을 넓히는 여섯번쨰 혁명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수학이 생물학을 이해하는데 깊은 통찰력을 준 예를 하나 하나씩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수학 알고리즘 최적화가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을 앞당기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절약한 예, 꽃잎의 기하학적인 배열에 의한 수열 및 모델링, 적절한 종의 분류 및 분기도를 찾는 알고리즘, 군론에 의한 바이러스의 구조해석, 곤충과 동물의 걸음걸이 해석, 신경세포 신호전달 매커니즘 모델링 등등, 수학적인 접근방법이 없이는 생물현상을 깊게 이해하기 힘든 예와 수학이 얼마나 효율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는지, 단계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을 하게 되었고, 수학에 의한 생물학의 혁명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학과 물리학의 오랜 협력관계에 비해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수학과 생물학이 만나 이런 재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물질구조과학은 응집물질물리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수학, 컴퓨터과학 등에 폭넓게 걸쳐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저마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상호 교류하면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고체의 결정 및 자기구조를 기술하고 상전이현상을 이해하려면 군이론에 바탕을 둔 결정학 및 란다우 상전이이론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최근 에서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수학적 사고가 왜 연구에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수학이 생물학에 깊은 통찰력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 앞으로 눈부시게 발전할 수리생물학 분야의 흥미 있는 연구를 기대해봅니다.
다음주자는 프랑스 원자 및 대체 에너지 기구(CEA), 레옹 브릴루앙 연구소(LLB)에서 중성자산란을 통해 고체의 자기동역학을 연구 중이신 정재홍 박사님입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호기심이 많으셔서 평소에도 다양한 관심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하십니다. 정재홍 박사님의 즐거운 책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읽는 분들의 해석도 다양하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잘 일고 갑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