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산업 그리고 갑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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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동안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필자는 제법 참을성이 길러져서 현지의 늦은 일처리를 잘 참는 편입니다. 하지만 ‘내로남불’의 경지를 완전하게 넘지는 못하여, 다른 한국인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 ‘느림의 미학’을 설파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속으로는 여전히 흥분합니다. 얼마 전 수퍼마켓 계산대에서 줄을 섰는데, 갑자기 바로 내 차례에 직원이 바뀌며 인수인계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요즈음은 자기가 계산한 돈통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각자 들고다니기 때문에 인수인계에 시간을 끌 일이 없고 박스만 바꾸어 끼우면 되는 일이죠. 하지만 이 젊은 여성 직원들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지, 한동안 수다를 떤 후에 볼키스까지 주고 받고는 교대를 했습니다.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여서 여유를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인종차별 상황까지 설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버하면 안되지!’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웃는 척하며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저들이 후다닥 교대를 마치고 내 계산을 도와주었다면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그 자리에 한 번 앉으면 몇 시간동안 심란한 고객에게도 적절히 응답해야 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행동도 도와줘야 하는 20대의 젊은 아가씨들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이 짓 언제 그만두지?’ 그 비슷한 이유로 중소기업들은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젊은이들은 갈만한 일자리가 없다고 좌절합니다. 선배들에게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은 이야기는, 기본이 안된 회사 한 번 잘못 들어가면 영원히 그곳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월급액수만 빼고는 이런 근로상황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는 새내기들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것은 육체노동의 강도나 늦은 퇴근시간이 아닙니다. 무례한 상사로부터 무시당하는 느낌, 그리고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프랑스 레스토랑의 서비스 스타일에 불만을 토로합니다. 공손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 문화는 점원이 손님을 친구처럼 대등하게 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옷가게를 들어가도 누가 따라붙어서 계속 제품을 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손님과 고객은 선택과 흥정으로만 엮일 뿐 갑과 을이라는 설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정해둔 규칙을 넘어선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는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말합니다. 물론 지나친 경우도 흔하죠. 예를 들면 가게가 저녁 8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붙여두었으면, 대체로 15분 전에는 가게에 입장해야 합니다. 8시까지란 손님이 가게에 입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문을 닫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영업자인데도 약간 시간이 넘었다고 들어온 손님을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돈을 벌 의사가 없으면 왜 가게를 운영할까?’ 정말 질문해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하루만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이 무너지면 계속 일이 늘어날 것이고 절제를 못해서 결국에는 일이 즐겁기보다 싫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손님이 정말로 많아져서 금방 떼돈을 번다면 가게를 그만 두고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겠지만, 겨우 30분 더 오래 가게를 열어둔다고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고객인 내자신이 훈련되어 폐점시간전에 가게에 도착하려고 시간을 맞추고, 약간 늦어지면 아예 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을’이 ‘갑’을 훈련시킨 신종 스톡홀롬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비스를 주는 사람도 개인 스케줄과 인격을 존종받아야 합니다. 돈이 그 모든 어긋남과 실례를 다 보상해준다는 논리는 우리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누구든지 언제나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우리도 돌아서면 직장상사든 건물주든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배풀어주어야 하는 ‘을’입니다. 우리가 을의 지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다른 을들을 찾아 돌려준다고 우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쪽에서 받은 모욕감을 저쪽에다 던지며 복수하는 것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아주 비겁한 행위입니다. 돈으로 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을의 위치에 놓이면 훨씬 더 비굴해질 것입니다. 상업거래에 인격이 같이 할인판매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쉽게 알바도 하려고 할 것이며, 그들이 경험한 작은 일들이 결국 큰 일을 시작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