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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와 과학

사람은 분명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남들과 다르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남들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항상 가진다. 필요하면 나타내고 불리하면 숨길 수 있는 재력이나 학벌 등은 얼마든지 많이 가지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즉시 확인되는 외모는, 남들보다 출중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용납할만한 어떤 카테고리 안에 있길 원한다. 대표적인 것이 키와 몸무게다. 키가 작은 남자들은 작은 키가 너무 원망스럽다. 나는 나이가 들며 키가 사정없이 줄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분명 옛날에는 171이었는데,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키를 잴 때 169.5라고 차트에 적던 프랑스 간호사가 너무 미웠다. “학교에서 반올림도 안배웠어요? 왜 소숫점 아래까지 키를 적나요?”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하지만 키가 너무 큰 남성이 받는 스트레스도 다리 짧은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만큼 될 것이다. 몸무게 또한 마찬가지다. 체구가 좋은 사람들은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고 너스레를 떨며 양념통닭을 집어삼키지만, 정작 살이 너무 없어서 빼빼로같은 다리를 가진 사람들은 남들에게 농담도 못하고 속앓이를 할 것이다.

탈모는 대표적으로 남들 다 있는 것이 없어서 생기는 스트레스다. 다양한 모자가 생산되는 세상에서 보온을 위해서나 햇빛 가리는 용도로나 머리숱이 특별한 역할을 할 것같지 않은데도, 머리숱이 적은 사람들 스트레스는 어머어마한 모양이다. 그런데 대머리와는 정반대로 털이 없어야 하는 곳에 털이 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도 어떤 곳에는 털이 많아야 하고 또 다른 부위에는 털이 없어야 한다니, 참 은밀하고도 복잡한 기준이다. 그래서 머리와 털관련 상품의 시장규모는 엄청나다. 한국내 샴푸시장만 연간 약 4조원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세계시장 규모를 검색해봤더니 샴푸와 컨디셔너, 오일, 염색제 등을 합한 Hair Care Products세계시장규모는 1000조원 (750억달러) 정도라고 한다. 2021년 대한민국 정부 국가 예산이 약 600조원이라니까, 세계의 샴푸 시장만 전부 장악해도 쉽게 ‘찐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같다.

‘털시장’ 전체는 이보다 5배 정도는 더 클 것 같다. 우선 샴푸같은 세제 외에, 제모제, 면도기, 미용실과 이발소 (전세계 방방곳곳에 인구 천명당 하나씩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발모제, 모발이식수술까지 합하고 가발산업까지 더해본다면 대충 계산이 나온다. 그 규모의 장대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뼈와 살’도 아니고, 겨우 ‘머리카락과 털’이 가진 시장규모가 이렇게 크다니 말이다.

최근에 어느 바이오 벤처회사가 발모제에 온 연구역량을 집중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댓글 반응이 시큰둥했는데, 별로 안믿는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정말 애석한 일이지만,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이용한 발모제에 총력을 기울였더라면 그 고초도 치루지 않았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인처럼 대접받았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재생가능 세포와 재생불가 세포가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재생불가 세포는 신경세포, 재생가능 세포로는 간세포가 자주 언급된다. 그런데 재생가능 세포중에서는 재생후에도 계속 자라는 세포가 있다. 바로 털 종류와 손톱, 발톱이다. 이 세포들 속에 줄기세포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문가에게 들은 적이 있어서 황우석 박사를 떠올려봤다.

위의 바이오 밴처가 연구에 성공한다면, 탈모방지약 뿐만 아니라 피부에 바르는 발모제도 나올 수 있을 것같다. 그래서 발모제 연고를 피부 특정부위에 바르고 잤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1센티 정도 자란 털이 마치 잘 가꾼 잔디밭처럼 만들어진 것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또다른 “헤어 스톱 연고”를 바르면 털의 성장을 그대로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약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우리는 머리털이 자라지않도록 컨트롤해서 미용실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반대로, 발모제 연고를 사용하여 일주일만에 머리털이 엄청 자라게 한 후 전혀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분위기 변신도 가능하다. 골라서 입는 옷이나 모자와 안경처럼, 체모를 조절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진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연구주제 선정에 관한 이야기다. 정치인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거창한 주제보다, 뭐가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열광하게 만들지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다. 한쪽이 유행을 타면 전부 그 방향으로 달리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냥 감기처럼 앓다 지나간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말인데, 발모연구처럼 “익숙해진 소소한 불가능”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져보자. 우주를 정복하고, 운전자 없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커피를 서빙하는 AI 로봇을 만들려는 거대한 사명감을 가끔 잊어보자. 잠시나마 짬을 내서 주변을 관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일상속 소소한 비밀들은, 과학이 먼저 말을 걸어오길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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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훈(htlaz) 2022-03-09

탈모 고민이 없는 저로서 댓글 다는 게 거시기 한 일이나 요즘 가발도 너무 잘 나오지 않나요? 탈모로 스트레스
받는 분들께 위안이 될 거라 보이는데....하지만 발모제 개발만 우리나라에서 하면 초 대박 히트 분명하고요.

거창한 주제보다 소소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도움을 주는 주제를 선정하자는 의견에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연구주제 선정에 있어서 정치적인 이슈를 뺀다면 훨씬 다양하고 기발한 연구들이 많이 나올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정말 좋겠네요~ 이번 컬럼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